자원봉사 이끈 이승로 성북구청장
매년 쌀 300포대 제공 익명 기부자코로나 속 계속했는데 “올핸 죄송”
저소득가구 사정 우려 목소리에
주민·마트·기업들 함께 나눔 실천
“14년간 쌀을 보내 주신 ‘얼굴 없는 천사’의 뜻을 주민들과 이어받아 가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난 11일 이른 아침 서울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 앞. 이승로 성북구청장과 40여명의 자원봉사자는 20㎏ 포장 쌀 300포대를 나르며 구슬땀을 흘렸다. 2011년부터 해마다 1000여만원어치의 쌀 300포를 주민센터에 보내온 익명의 시민이 지난달 “올해는 어렵게 됐다”며 중단 의사를 밝히자 십시일반 마련된 자리다. 이 구청장은 “기부자께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건 아닌지 걱정스러운 마음”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기부자가 그동안 기부한 쌀은 모두 4200포로 시가 2억 2000여만원에 이른다. 매해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차상위 등 저소득가구에 전달돼 설 밥상을 따뜻하게 채웠다. 기부자의 쌀이 도착하는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모인 주민들이 쌀을 나르느라 긴 줄을 서는 게 연례행사였다. 함께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이 생활소품을 만들어 전달하는 등 선행도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기부 중단 소식은 월곡2동 주민들 사이에 작지 않은 파문을 일으켰다. 코로나19 시기 등 경기가 어려웠을 때도 이어졌기에 혹시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워진 건 아닌지, 건강상 문제는 없는지 추측이 난무했다. 무엇보다 쌀 지원이 중단될 위기에 부닥친 저소득가구의 사정을 우려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에 주민들은 14년간의 선행을 계승하자는 뜻을 모았다. 지난달 17일부터 ‘월곡2동 마을 천사 온기나눔 사업’ 캠페인을 벌였다. 주민들과 지역 직능단체, 금융기관, 마트, 기업 등이 힘을 보태면서 보름 만에 쌀 300포를 마련했다.
이 구청장도 “미담 선순환의 자리에 함께해 감격스럽다”며 “기부자가 남겨 놓은 나눔의 가치를 주민과 행정이 함께 이어가며 더불어 살아가는 성북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서유미 기자
2025-02-14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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